남편을 4년 전에 먼저 떠나보내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다 보니 생활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무 탈없이 지금껏 잘 자라주어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어느덧 아이들도 훌쩍 커버려서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니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자라면 대학을 나와 자립을 하고 내 품을 떠날텐데…….’ 내 자신의 허전함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 뿐. 어른스러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지만 정작 나이들어 가는 나 자신의 허전함은 누가 채워줄 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다 보니 노후에 홀로 쓸쓸히 보내기보다 나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터라 어린아이들을 남겨두고 갔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큰 일을 겪어서 그저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4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잘 자라주어서 고마운 한편 대학까지 보낼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 오기도 했다.
재혼은 생각도 안하고 살았지만 자꾸만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을 보고 탤런트 김영란씨가 대표로 있는 행복출발이라는 재혼정보회사를 알게 되었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터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행복출발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전화로 문의를 하고 바즐이라는 아늑한 공간을 찾게 됐다.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걱정이 앞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난감했다. 커플매니저의 안내에 따라 리메리스튜디오에서 8대 8의 미팅을 주선받게 됐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어떤 희망과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후 김혜수 커플매니저에게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혼이나 사별 후에 혼자 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어 회원에 가입하게 됐다.
가입 후에 다른 회원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이루어지는 쌍도 제법 많은 것 같았다. 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남성들이 상대방 여성이 아이가 있다고 하면 무척 꺼리는 것을 느꼈다. 본인도 아이를 키우면서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김혜수 커플매니저에게서 한 남성을 소개받게 되었다. 사별을 하고 여자아이 둘을 키우는 분이었다. 첫인상이 무척 좋아 느낌이 괜찮았다. 두 시간 정도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 근처에 그 분이 아는 곳이 있다고 해서 자리를 옮겼다.
소주에 주꾸미 안주를 시켜놓고 사별이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 또한 남편의 건강이 좋아 않아 먼저 떠난 보낸 터라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안쓰러움과 죽은 뒤에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때문에 눈물의 회한을 머금게 했다.
남성은 하루가 급해 보였다. 빨리 재혼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나는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자고 했다. ‘각자 살아왔던 방식도 있고 두 집이 서로 합치게 된다고 해도 하루 아침에 안정될 수는 없는 것이니 시간을 두고 서로의 아이들이 적응을 할 수 있는지 만남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했다.
며칠 후 그 분이 하는 가게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서 찾아가게 됐다. 제법 큰 규모였다. 큰 딸이 아빠를 도우며 틈틈이 집안을 돌보는 것 같았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복스럽고 마음에 쏙 들었다. 예전에 아들 둘만 키워서 그런지 여자아이 옷만 보면 그렇게 예뻐서 사고 싶은 마음에 쳐다보곤 했었다. 우리 집안은 딸이 귀한 터라 예쁜 딸이 생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 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중인 큰 딸과 중학교 1학년인 작은 딸, 나는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이 있으니 서로에게 남동생과 오빠, 누나와 여동생이 생기니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됐다.
그래도 아이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우선 내 아이들과 밖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토요일 학교에 끝나는 것을 기다려 식당에 데려갔다. 막상 얘기를 꺼내려니 망설여져서 학교생활 등만 물어보다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서 같이 볼 사람이 있다’고 하자 큰 아이가 눈치를 채면서 누구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엄마가 너희들 다 키우고도 혼자 살기를 원하냐’고 물어봤더니 큰 아들은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사시라면서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마음이 아렸다. 벌써 이렇게 커서 엄마를 이해해 준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를 이해해 주는 마음이 어찌나 고맙고 미안한 지……. 말을 꺼낸다는 것이 내심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잘 이해해 주어서 기뻤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고 서로 식사하는 기간을 갖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허락을 하는 것이었다. 나처럼 신중하게 서두르지 서로에 대해 알 때까지 서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 장학금을 타고 학교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까지 갖추게 됐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아 요즘 무척 행복하다. 남편과 살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심리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 덕분에 나의 재혼도 지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
재혼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대화로 건강한 삶을 살도록 서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행복은 돈이 많아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만들어갈 뿐이다.